인천 역사 여행조선
성균관 유생의 대표였던 학자
조정만 묘
언덕 위 묘역에 돌로 만든 사람 형상이 서 있습니다. 문인석입니다. 이곳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조정만 선생이 잠든 곳입니다.
조정만은 1658년에 태어나 173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관은 임천이고, 호는 오재입니다. 아버지 경망은 합천군수를 지냈습니다.
그는 송준길에게서 학문을 배웠습니다. 숙종 7년인 1681년, 진사시에서 장원으로 뽑혔습니다. 그 뒤 성균관에 들어갔습니다. 이듬해에는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했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정만은 성균관 유생들의 대표가 되어 이를 규탄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상소의 맨 앞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을 소두라고 불렀습니다.
1694년에는 의금부도사가 되었습니다. 이어 공조와 호조를 비롯한 여러 관청에서 일했습니다. 장악원정을 지내고, 마침내 정헌대부와 지중추부사에 올랐습니다. 그는 경서와 역사책, 여러 학자의 책에 두루 밝았습니다.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남긴 책으로 『오재집』이 있습니다.
묘역에는 묘비와 문인석이 놓여 있습니다. 근처 길가에는 높이 3.5m의 신도비도 서 있습니다. 신도비는 높은 벼슬을 지낸 이의 평생 업적을 기려 무덤 가까이 길가에 세운 비석입니다. 글은 이의현이 짓고, 글씨는 김진상이 썼습니다.
묘역을 둘러본 뒤 신도비 앞에도 들러 보세요. 한 학자의 삶을 기록한 비석의 글자를 천천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방문 팁
- · 후손이 돌보는 묘역이니 석물에 오르거나 만지지 마세요.
- · 묘역 근처 길가의 신도비도 함께 둘러보세요.
- 주소
- 인천 남동구 도림동 산 46-3번지
- 지정
-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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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출처: 국가유산청. 도슨트 원고는 펜션라이프가 출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검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