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피로 지킨 효심
이찰·이율 형제 정려
도시 한가운데, 작은 옛 건물 하나가 조용히 서 있습니다. 바쁜 차들과 높은 건물 사이에서 조금은 낯설어 보입니다. 왜 이런 자리에 옛 건물이 남아 있을까요? 이곳은 효자 형제를 기리는 정려입니다. 정려는 나라에서 효자나 열녀를 기려 내린 표식입니다. 그 사람이 살던 마을 앞에 세워 오래도록 본보기로 삼게 했습니다.
주인공은 이찰과 이율 형제입니다. 조선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의 후손입니다. 형제는 광해군 6년, 1614년에 명문가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행실이 바르고 효성이 지극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형제는 곁을 떠나지 않고 사방으로 약을 구했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형제는 손가락을 깨물었습니다. 그 피를 아버지 입에 흘려 넣으며 정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형제는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무덤 곁에 묘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묘막은 무덤 가까이 지은 작은 집입니다. 시묘살이는 그곳에 머물며 부모의 상을 치르는 일입니다.
시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뒤에 어머니가 위독해졌을 때도 형제는 아버지 때와 똑같이 정성을 쏟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다시 묘막을 짓고 3년을 지냈습니다. 부모 두 분을 위해 형제가 무덤 곁에서 보낸 세월을 떠올려 보세요.
이 모습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은 형제를 칭찬했습니다. 부평의 유지들은 나라에 글을 올려 효행을 알렸습니다. 현종은 서원공 한숙에게 형제의 효행을 기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670년, 현종 11년에 효자 정려를 내렸습니다. 한 마을의 칭찬이 나라의 기림이 된 셈입니다.
이 정려는 처음엔 갈산동 종손 집 옆에 있었습니다. 도시가 커지면서 지금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정려 앞에 서서 건물의 생김새를 찬찬히 살펴보세요. 빌딩 사이에서 오래 지켜 온 효의 이야기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질 겁니다.
방문 팁
- · 정려는 기념물이니 기대거나 올라가지 말고 바깥에서 둘러보세요.
- · 아이와 함께라면 형제의 효행 이야기를 들려주기 좋은 자리입니다.
- 주소
- 인천광역시 계양구 갈현동 산 73-6
- 지정
- 시도기념물
기본 정보 출처: 국가유산청. 도슨트 원고는 펜션라이프가 출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검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