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주교의 첫 세례자
이승훈 묘
조용한 산자락에 비석 하나가 서 있습니다. 이곳에 잠들었던 사람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인물입니다.
그 사람은 이승훈입니다. 1756년에 태어나 180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판 이동욱의 아들로 서울 중림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사가 되었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학문에만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이승훈은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갔습니다. 그곳 북경천주교회당에서 교리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는 일을 영세라고 합니다. 이때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조선 교회의 주춧돌이 되라는 뜻이 담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되었습니다.
돌아온 이승훈은 1785년 서울 명동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역관 집안 출신인 김범우의 집이었습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입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고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의 신앙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신앙을 버렸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다 순조 1년인 1801년, 천주교 박해인 신유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이승훈은 정약조, 최창현, 홍교만, 홍낙민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만수동 남동 정수장 뒤편 초곡산에 묻혔습니다. 1981년에 경기도 광주군의 천주교 성지인 천진암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는 비석과 빈 무덤인 가묘만 남아 있습니다. 그 곁에는 아들 택규와 신규의 묘가 함께 있습니다.
비석 앞에 서서 아들들의 묘와 나란히 놓인 모습을 살펴보세요. 떠난 아버지의 자리를 아들들이 지키고 있는 듯한 풍경입니다.
방문 팁
- · 묘역이니 큰 소리를 내지 말고 봉분에 오르지 마세요.
- · 이승훈의 유해가 옮겨진 천진암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 두면 이곳이 비어 있는 까닭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 주소
-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1
- 지정
- 시도기념물
기본 정보 출처: 국가유산청. 도슨트 원고는 펜션라이프가 출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검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