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감춘 선비의 산
월성박씨 종중 묘역
낮은 산 서쪽 언덕에 봉분과 비석, 석상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이 산의 이름에는 숨은 사연이 있습니다. 무엇을 감추려 했던 걸까요?
이곳은 월성박씨 집안의 묘역입니다. 월성박씨는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여덟째 왕자인 월성대군의 자손입니다. 고려 후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전기와 중기에 크게 번성했습니다.
집안의 중시조는 박구입니다. 중시조는 집안을 다시 일으킨 조상을 말합니다. 박구는 고려에서 중군사정부령이라는 벼슬을 지냈습니다. 고려가 망하자 그는 이곳에 들어와 숨어 살았습니다. 자신을 감춘다는 뜻으로 호를 장아라 했습니다. 그리고 뒷산을 장아산이라 불렀습니다.
묘역은 장아산 서쪽 언덕에 있습니다. 박구와 그 후손인 박간, 박휘, 박신겸, 박호겸, 박홍중 등의 묘 11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박홍중은 조선 중기의 문인입니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습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장아산에서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묘역에는 봉분과 묘표, 문인석, 망주석이 있습니다. 묘표는 무덤 주인을 알리는 비석입니다. 문인석은 관복을 입은 사람 모양의 돌입니다. 망주석은 무덤 앞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입니다. 모두 조선 사대부의 유교식 무덤 꾸밈을 보여 줍니다.
특히 박휘, 박신겸, 박호겸의 묘표는 만든 시기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조선 중기 무덤 양식과 조각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금석문 자료가 됩니다.
묘표 앞에 서서 돌에 새긴 글씨를 가까이 보세요. 그리고 고개를 들어 뒷산을 바라보세요. 자신을 감추고 살았다는 박구의 마음이 그 이름 속에 남아 있습니다.
방문 팁
- · 후손이 돌보는 묘역이니 봉분에 오르거나 석물에 기대지 마세요.
- · 묘마다 문인석과 망주석의 생김새를 견주어 보면 시대에 따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 주소
-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산 29-17
- 지정
- 시도기념물
기본 정보 출처: 국가유산청. 도슨트 원고는 펜션라이프가 출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검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