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살아서 모신 청백리
동강서원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사당을 지은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그만큼 백성의 사랑을 받은 관리가 있었습니다. 이 서원은 그 주인공을 모신 곳입니다.
동강서원은 우재 손중돈을 모시고 그 학문과 덕을 기리려고 세운 서원입니다. 조선 숙종 때 다섯 도의 유생들이 뜻을 모아 세웠습니다. 한 고을이 아니라 여러 지방의 선비들이 함께한 셈입니다. 처음에는 숭덕사와 순교당, 탁청루, 유도문 같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손중돈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계천군 손소의 아들입니다. 점필재 김종직 아래에서 공부했습니다. 성종 때 사마시에 합격한 뒤 벼슬길에 나섰습니다. 경상도와 충청도, 전라도, 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냈습니다. 한성판윤과 도승지, 이조판서도 거쳤습니다. 그리고 청렴한 관리에게 주는 이름인 청백리에 뽑혔습니다.
그가 어떤 관리였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주목사 시절 고을을 잘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민들이 상주 단밀에 생사당을 지어 그를 모셨습니다. 생사당은 살아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는 만세교라는 다리를 놓았습니다. 주민들은 그 덕을 기리며 칭송했다고 합니다.
서원은 고종 때 대부분 헐렸습니다. 그 뒤 사당인 묘우와 강당, 신문을 다시 세웠습니다. 이어 동재와 서재, 신도비각을 지었고 탁청루도 복원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건물들은 이렇게 차례로 되살린 모습입니다.
강당 가운데에는 세 칸 대청이 있습니다. 양옆에 온돌방을 한 칸씩 두고 앞에는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이곳에서 여러 행사와 학문 토론이 열립니다. 묘우는 앞면 세 칸, 옆면 두 칸의 맞배집입니다. 지붕 옆면에는 비바람을 막는 풍판을 달았습니다.
강당 대청 앞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세요. 선비들이 둘러앉아 토론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서원의 쓰임이 한결 가깝게 느껴집니다.
방문 팁
- · 묘우는 제사를 모시는 곳이니 문이 닫혀 있으면 열지 말고 바깥에서 예를 갖추세요.
- · 강당과 묘우, 탁청루의 위치를 차례로 보면 서원의 배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 주소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유금강정길 40-25, 3필 (유금리)
- 지정
- 시도기념물
기본 정보 출처: 국가유산청. 도슨트 원고는 펜션라이프가 출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검수했습니다.




